니치 향수 출시 증가, 새로운 시장 형성 기대
올해만 10여개 브랜드 도입…독특한 철학 바탕 마니아층 확보
[CMN] 국내 향수 시장에 세계적인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잇따라 도입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에 도입된 니치 향수 브랜드만 30여개에 달한다. 특히 올해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가는 브랜드만 10여개에 이른다.
금비화장품이 프랑스의 니콜라이와 샤보, 이탈리아의 라보라토리오 알파티보 등 3개의 니치 향수 브랜드를 도입했고 씨이오인터내셔널도 프랑스 그라스 지방의 대표 브랜드인 프라고나르를 하반기 런칭할 예정이다.
코익도 지난해 말 팝업스토어를 통해 우선 소개한 앳킨슨과 일루미넘 등 2개 브랜드를 이달부터 공식 판매에 들어갔고 킨타브도 영국의 플로리스와 이탈리아의 오 디딸리 등 2개 브랜드를 이달 첫선을 보인다. 하이코스는 40년 전통의 프랑스 니치 향수 레미니상스를 지난달 선보였고 BMK는 영국 브랜드 밀러 해리스를 도입, 1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소량생산, 엄격한 품질관리로 저변 확대
니치는 말 그대로 틈새를 뜻하는 것으로 특정 성격을 지닌 소규모 소비자를 대상으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듯 판매에 집중하는 것을 이른다.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 대량 판매로 이어지는 매스 시장과 반대되는 시장이다.
니치 향수의 경우 향수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카테고리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통 고가의 하이엔드급 향수로 알려져 있는데 전문가들은 가격과 상관없이 브랜드 성격에 따라 니치 향수로 구분하고 있다. 우선 소량 생산 소량 유통 방식은 기본적인 특징이다.
여기에 장인정신을 꼽는다. 수대에 걸친 전통적인 방식으로 향수를 제조하는 방식이다. 수작업이 가미되기도 한다. 또 독특한 향을 얻기 위해 산지에서 직접 주요 향 원료를 추출하거나 전속 조향사를 두기도 한다. 조향사로 출발한 브랜드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이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또는 아티스틱한 면에서 출발한 브랜드도 니치로 묶인다. 모던하고 예술적인 디자인과 잘 알려지지 않은 향을 조합, 시장 트렌드에 묶이지 않고 독특한 철학을 바탕으로 마니아층을 끌어들이는 브랜드들이다. 크리에이터나 디자이너 출신에 의해 창시된 브랜드들이 대부분이다.
씨이오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고가의 하이엔드급이라고 모두 니치 향수는 아니”라며 “엄격한 생산 관리와 조향 관리가 뒷받침된 장인정신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OEM 방식으로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존의 상업적인 패션 브랜드 향수와 달리 산지를 갖추거나 전속 조향사를 통해 향으로 입지를 다지면서 ‘명품’으로 자리잡은 브랜드를 일컫는다는 설명이다.
금비화장품 관계자도 “니치 향수는 향 자체에 대한 프리미엄이 높다”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향 조합에 핸드 메이드 방식의 디자인이 가미되면서 독특한 컨셉을 전하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2010년대 이후 급증, 30여 브랜드 각축
국내에 이같은 니치 향수가 일정한 영역을 확보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업계는 지난 2012년 8월 조말론 향수가 국내 들어오면서 니치 향수 붐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무렵부터 국내 도입된 니치 향수 브랜드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에서 확인된다.
국내에 첫 도입된 니치 향수는 크리드와 아쿠아 디 파르마, 딥티크 등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오다 니치 향수중에서 비교적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춘 조말론 향수가 들어오면서 일정한 트렌드를 형성할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오랜 역사, 왕실 공식 지정 향수로 명성
국내 도입된 니치 향수는 무엇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가 많다. 특히 유럽 왕실 조향사로 활약하거나 왕실 공식 향수로 지정됐다는 점을 내세운 브랜드가 눈길을 끈다. 크리드와 랑세, 펜할리곤스, 앳킨슨, 플로리스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 설립일 기준으로는 플로리스가 1730년 출발해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어 크리드가 1760년, 랑세가 1795년, 앳킨슨이 1799년, 펜할리곤스가 1872년 출발했다. 특히 랑세는 선대 가문에서 귀족들을 위한 개별 향수를 개발한 것까지 포함하면 1600년대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4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뽐낸다.
랑세는 나폴레옹 가문의 전속 조향사 프랑수아 랑세를 시작으로 11대째 전통과 역사를 유지하며 프랑스 황실 메종 향수로 이름을 알렸다. 플로리스도 영국 왕실 공식 납품 향수로 명성을 쌓았고 크리드도 7대째 이어온 조향사 가문의 브랜드로 유럽 공식 왕실 향수로 유명하다. 앳킨슨은 영국 왕실 공식 조향사로 이름을 알렸고 펜할리곤스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 창시된 브랜드로 영국 왕실 조달 허가증을 받았다.
조향사로 출발, 향 프리미엄 가치 전달
조향사로 출발한 브랜드도 많은 편이다. 니콜라이와 샤보,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밀러 해리스, 이스뜨와 드 파퓸 등이 대표적이다. 니콜라이는 겔랑가의 손녀이기도 한 조향사 파트리시아 드 니콜라이로부터 출발했으며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탄생한 샤보는 전속 조향사이기도 한 창업자 소피 샤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탄생시킨 브랜드다.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24세의 나이에 장 폴 고티에 르말을 만들면서 세계적인 조향사로 떠오른 프란시스 커정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런칭한 브랜드다. 드레스룸에서 옷을 꺼내 입듯 다양하게 향을 선택할 수 있는 ‘향수 드레스룸’ 컨셉으로 향수를 만들고 있다. 밀러 해리스는 영국을 대표하는 정통 조향사인 린 해리스가 창조한 브랜드다. 이스뜨와 드 파퓸은 향수 전문학교 이집카 출신인 제랄드 기슬랑이 창시한 브랜드로 과거 역사속 인물들과 그에 연상되는 원료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향을 전하는 향취의 라이브러리 컨셉을 취하고 있다.
원료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 관여 ‘장인정신’ 고수
산지를 두고 직접 원료를 재배하는 것을 비롯해 향수 전 과정을 직접 관여하면서 높은 품질의 향수를 출시하는 브랜드도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 향 원료 산지로 유명한 그라스 지방의 대표 브랜드 프라고나르가 이에 해당한다. 씨이오인터내셔널이 하반기 런칭할 예정인 프라고나르는 프랑스 외 타국으로 진출하는 것은 이번 한국이 처음으로 알려질 정도로 까다로운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1926년 설립된 오랜 역사와 그라스 지방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향수 제조사로 에센스 추출부터 패키지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관장, 다른 니치 브랜드와 차별화했다.
장 파투는 100년에 가까운 전통과 품격을 지닌 최고급 클래식 향수로 정평이 나 있다. 장 파투는 패션으로 출발했지만 그가 개발한 향수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장 파투의 향수는 주스가 지닌 가치와 섬세한 조향 스토리로 단순한 향기를 넘어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9년 첫선을 보인 ‘조이(Joy)’는 세기의 향수라 불리는 대표작이다. 경제 공황기인 1929년 오히려 ‘사치하자’라고 외치며 발표한 제품. 1온스(28g)의 향수를 위해 1만600송이의 자스민과 336송이의 장미가 사용돼 가장 값비싼 향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단순히 향수 원액뿐 아니라 용기 제작과 향수 충진, 포장 등의 작업이 최고의 장인에 의해 완벽하게 수공으로 이뤄지는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밖에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0번의 시도 끝에 완성한 향수라는 의미로 붙여진 ‘1000’, 여성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전하기 위해 탄생한 ‘수블림’ 등이 유명하다.
크리에이티브 컨셉으로 독특한 철학 전달
독특한 컨셉의 크리에이티브 브랜드도 눈길을 끈다. 딥티크와 라보라토리오 올파티보, 세르주 루텐, 에디션 디 퍼퓸 프레데릭 말, 바이레도, 르 라보, 메모, 이스 유작, 디센트 오브 디파쳐, 레미니상스 등이 대표적이다.
딥티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명성을 쌓아온 세명의 창업자들이 추억하는 여행의 추억과 매혹적인 장소에서 영감을 받은 향수 시리즈로 주목받았고 라보라토리오 올파티보는 이탈리아 아티스틱 향수로 자유롭게 창의력을 펼치는 퍼퓸 아티스트들의 작업공간을 표현하고 있다. 세르주 루텐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부터 비주얼 디렉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뷰티 크리에이터로 명성을 쌓은 세르주 루텐이 창시한 브랜드로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프레데릭 말은 출판 컨셉을 도입, 조향사가 저자가 되고 향수는 책 모양 박스로, 진열도 서가처럼 꾸민 것이 유명하다.
레미니상스는 40년 전통의 프랑스 브랜드로 히피 문화와 자유로운 분위기의 60년대에 영향을 받은 창업자가 유럽의 낭만적인 색채와 이국적인 디자인이 결합한 향수를 내놓으면서 주목받았다. 바이레도는 아트스쿨 출신 디자이너로부터 출발했고 르 라보는 연구실이라는 이름답게 실험실처럼 꾸며진 매장에서 단 한명을 위한 향수를 전하는 컨셉을 취하고 있다.
메모는 출판업계 편집장 출신인 창업자가 조향사 인터뷰를 담은 책을 펴낸 후 사업을 전개한 브랜드로 여행을 통해 경험한 향과 기억 등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스 유작은 100% 핸드 메이드 방식의 패키지로 미술작품처럼 구현하는 것이 유명하며 디센트 오브 디파쳐는 여행이라는 테마와 수화물 태그를 연상시키는 보틀이 인상적이다.
매장 진열에도 철학 반영, 백화점‧편집숍 중심 유통
이들 니치 향수는 소량 생산 방식을 취하다보니 기존 매스 향수보다 2~3배 정도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게 보통이나 직접 산지를 두고 있는 브랜드의 경우 기존 매스 향수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또 컬렉션 형태로 매장 진열에도 브랜드 철학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유통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백화점 단독 매장이나 패션 편집숍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씨이오인터내셔널은 백화점 매장 외에 BTY갤러리라는 직영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BTY 퍼퓨머리 프랜차이즈 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킨타브도 최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사가 도입한 니치 향수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퍼퓨머리 523’이라는 편집숍을 오픈했다.
코익 관계자는 “니치 향수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시장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나만의 개성있는 향수를 찾으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일정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든 단계”라며 “유통이 제한적이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로 자리잡고 있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