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통계와 거짓말
[CMN 박일우 기자] ‘품절 대란’ ‘전 매장 품절’ ‘초도물량 완판’ ‘전월 대비 300% 수직 상승’
누런 황금을 품은 개띠 해라서 그런지 연초부터 저런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많이 받아본다. 산업지 기자로서 매진될 정도로 화장품이 잘 팔린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다만, 물리적 여유가 부족해 팩트 체크를 제대로 못하고 업체 측 자료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는 점은 부끄럽고 아쉽다.
팩트 체크는 기자의 당연한 의무지만 일일이, 건건이 모두 확인할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꼭 써줘야 하는 거라면 ‘업체 측은 “어쩌고저쩌고 하다”고 밝혔다’ 정도로 처리하고 만다.
그런데, 솔직히 산업지 기자이기에 팩트 체크를 일부러 안 하는 이유도 있다. 아주 가끔, 여유가 생겨 팩트 체크를 해볼라치면 첨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업체 측이 보내온, 팩트 체크 대상이 되는 ‘발표의 기준’이 모호해서다.
실제 경험한 바로 ‘매장 품절’ 났대서 해당 브랜드 매장 몇 곳에 전화해보면 버젓이 팔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초도완판’에는 초도 생산물량 수치가 없어 얼마나 팔렸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전월 혹은 출시 대비 수백 % 상승했다는데, 기준치를 안 밝히니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때가 많다.
우리는 보통 통계로 잘했는지 못했는지 가늠한다. 통계치를 내면 어떤 행위에 대한 실적을 수치로서 한 눈에 알아보기 쉬워서다. ‘잘 팔린다’고 하는 업체 측 발표도 이 같은 통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통계엔 늘 ‘모호한 기준(표본) 설정’이란 함정이 따라다닌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세상엔 ‘그럿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3가지 거짓말이 있다고 했다. 통계의 오용 사례를 경계하는 의미로, 통계가 오염되면 의도치 않게 거짓말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격언이다.
우리 화장품 마케터들이 일부러 그럴리는 없을테고, 자칫 이런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업체 측이 나름 명확한 기준을 정해 발표한 자료일지라도 남들 눈에 그렇지 않다면, 이는 ‘팩트’가 아니라 ‘팩트로 유도하기 위한 업체 측 마케팅’이 돼 버릴 뿐이다. 심할 경우 소비자를 기만하는 ‘거짓말’이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는 걸 항상 유념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