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다시 찾은(?) 화장품 성지(聖地) ‘명동’
[CMN 박일우 기자] 며칠 전 오후 명동을 둘러봤다. 거리는 한산했다. 지난 3월 중국정부의 한국 여행 제한금지 직후처럼 썰렁하진 않아도 북적거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화장품업계에서 명동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중국발 특수가 없었을 때부터 그랬다. 명동에서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다른 어디에 매장을 내도 잘 됐다. 반대로 명동에서 밀리면 다른데서도 밀렸다.
신제품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곳도, 홍보를 집중하는 곳도, 매출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도 모두 명동이다. 이렇게 명동은 최전선이자 마지노선으로, 유커 싹쓸이가 없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각 업체들의 바로미터 역할을 해왔다.
화장품이 대중국 특수를 누리면서 명동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전국적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업체의 경우 명동 매출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상회하는 곳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업체들은 명동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중국어 간판을 내달고, 중국말을 하는 종업원을 고용하고, 유커 대상 프로모션을 걸었다. 유커의 명동 점령구역이 넓어질수록 업체가 얻는 이익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자꾸자꾸 되돌아봐도 참 좋은 시절이었다.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호시절은 ‘쫑’났다. 새 정권이 들어선 뒤 ‘한한령’이 풀릴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현실화 되기까진 넘어야할 난관이 적지않다. 한한령이 풀려도 업계가 기대하는 원상회복은 솔직히 쉽지않아 보인다.
업계가 최우선으로 바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사드 배치 철회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드 이슈에서 화장품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동에 다시 유커 발길이 들끓게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화장품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한마음으로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다만, 이번 그림엔 좀 더 이상적인 구도가 가미됐으면 한다.
며칠전 명동에서 마주친 몇 무리의 여성들에게 한산한 명동의 느낌을 물었다. 유커가 안 보여서 좋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여성은 ‘다시 찾은 대한민국 명동’이란 표현까지 썼다. 그동안 역차별을 당했으니 당연한 대답으로 보였다.
그런데 명동은 다시 찾아 즐겁지만 유커 자리를 대신 채워줄 생각은 없다는, 명동엔 나오겠지만 화장품 구매는 하지 않겠다는 말에 약간 충격을 먹었다. 본거지를 뺏기고 설움받던 한국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들려 아팠다.
못내 마음을 추스르며 거리를 돌다보니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젊은 여성들이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채로웠다. 조화롭기도 했다.
중국인만 보이고 중국말만 들리던 명동이었을 때보다 훨씬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았다. 저 구성 그대로 한산함이 북적임으로만 바뀔 수 있다면, 명동은 명실공히 세계 화장품의 성지로 불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오해는 없길 바란다. 유커가 빨리 다시 명동으로 돌아오길 업계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그냥, 다시 찾은 대한민국 화장품 1번지 명동의 이상향을 언뜻 넘겨다본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