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블러 시대 "경계 모호할수록, 길은 더 뚜렷"

기존 경계 무너지며 융복합 활발···새로운 산업 생태계 트렌드 부상

이정아 기자 leeah@cmn.co.kr [기사입력 : 2022-12-29 2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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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년기획] BLUR Rabbit - Big blur


[CMN 이정아 기자] ‘블러(Blur)’는 사전적으로 희미한 것또는 흐릿해진다는 의미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갈수록 뒤섞인다.

첨단 기술 발전, 사회 환경 변화 등이 이를 더욱 촉진시킨다. 경계 융화, ‘빅블러(big blur)’. 빅블러는 빠른 변화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의 경계가 모호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1999년 미래학자인 스탠 데이비스와 크리스토퍼 메이어가 저서 <블러: 연결경제에서의 변화 속도>에서 블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급속한 사회, 기술의 변화로 인해 굳건한 산업 간 장벽이 무너지고 결국 비즈니스 간의 구별 자체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이후 2013년 조용호가 저서 <당신이 알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비즈니스모델 대충돌을 일으키는 현상이란 맥락에서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이 허문 산업 및 업종 간 영역 붕괴, 모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빅블러현상을 하나의 혁명으로 언급하고 정의했다.

과거에는 업종 간 경계가 분명했던 반면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인공지능(AI),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의 혁신적인 기술 발전과 사회 환경의 변화 등으로 영역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빅블러 현상이 대두된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기술 발전에 힘입어 산업이나 업종 간 영역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빅블러는 이 시대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위한 경제용어로 활발히 쓰인다. 빅블러는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든 하나의 명확한 트렌드이자 모든 비즈니스 기업들이 추구하는 생존의 테마로 떠올랐다.

빅블러 대표 사례, 아마존·테슬라의 변신
빅블러는 우리 주변에서 어떤 형태로 일어나고 있을까? 온라인으로 도서를 팔던 아마존의 극적인 변신은 빅블러 시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고객경험을 지향하는 아마존은 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물론, 미디어 유통기업을 넘어 세계 1위의 클라우드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사로의 확장도 이뤄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지급결제, 은행계좌, 대출보험 등 경계를 넘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축적한 14,000만명의 고객은 아마존이 언제든 금융사로 변신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받는다.

다국적 커피전문점으로 78개국에 진출해 있는 스타벅스도 빅블러 현상의 선구적 사례다. 미국 디지털 시장조사 업체 이마케터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스타벅스 모바일 결제 시스템 사이렌 오더이용자 수는 미국에서만 2,340만명을 돌파했다.

이 수천만 명의 이용자들이 사이렌 오더에 충전한 금액은 약 20억 달러(한화 약24,000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스타벅스는 이 예치금으로 아르헨티나 은행 방코 갈리시아와 파트너 계약을 맺었고, 실제 오프라인 은행지점을 오픈하며 글로벌 핀테크 기업으로의 성장을 과시하고 있다.

기술혁신에 따른 빅블러 현상 가속화의 실례를 테슬라만큼 선명히 보여주는 브랜드도 없다. 전기자동차기업 테슬라는 자동차 사업에 비견될 만한 규모의 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테슬라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차량의 주행데이터를 분석, 개별 운전자의 사고 위험을 계산해 보험료를 책정한다.

차량공유회사 우버는 우버이츠를 통해 음식배달 서비스 시장에 진출했고 스마트폰 제조사 애플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애플TV+를 출시했다. 카카오도 모바일 메신저로 시작해 쇼핑, 커머스, 은행까지 전반적으로 산업의 영역을 늘려 가고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 파이낸셜 브랜드 중 최초로 요식배달 주문 앱을 선보였다. KB 국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통신사와 알뜰폰 시장에 진출했다. 유명 치킨업체는 자체 수제맥주 브랜드를 개발해 주류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첨단 기술 발전할수록 빅블러 현상 가속화
빅블러 현상은 동종업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두가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빅블러로 인한 영역 붕괴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기업, 산업 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기존의 경계가 무너지는 융복합 현상이 활발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첨단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빅블러는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이다. 빅블러는 1인 가구 증가와 온라인 중심의 소비패턴, 언택트 문화 확산 등에 따라 계속 강화될 전망이다.

모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산업과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유연하게 고객의 소리를 경청하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는 기업, 창의성에 기반한 고객 중심주의를 지향할 때라야 시장 기회를 획득할 수 있다.

초연결 시대, 우리의 생활에 빅블러는 이미 자리잡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알든 모르든 빅블러가 만들어놓은 초연결 시대에 들어섰고, 빅블러 현상으로 수많은 벽이 허물어진 세상에서 분명 과거와는 다른 일상을 누리고 있다.

따라서 기업이 고집스레 전통적 업종 구분에 머물게 되면 결국 레드오션의 벽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빅블러는 산업간 경계를 지우는 강력한 지우개이자 가장 강력한 시장 논리이다.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 시대에 서로 섞이고 융화되기 위해서는 경계를 지우고 낮춰야 한다. 서로 다르다고 치부해오던 것들 사이의 경계가 낮아지고 사라지면 서로 협력하거나 경합하는 관계로 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프레임을 깨야 한다. 빅블러 시대에는 고정관념이 최대 적이다.

빅블러는 쉽게 경계 융화가 일어나는 현상이다. 경계 융화는 두 요소들 사이에 명확하게 존재해왔던 경계가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변화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 환경적인 기저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한다.

융화는 서로 명확히 다르게 인식되던 것들 사이에 차이점이 줄거나 사라지면서 이전만큼 서로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어지는 현상이다.

이미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일상과 비일상, 시장과 비시장 환경의 경계조차 사라졌다.

ESG 개념의 확산도 알고보면 시장과 비시장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증거다. 최근 기업에서 최고의 화두는 ESG. 기업이 영리활동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성공하더라도 ESG라는 비시장 전략에서 실패하면 회사가 사라질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빅블러 현상은 향후 10년간 산업 지형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며 역동적으로 변화를 가속화 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당장 우리 기업은 빅블러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이 있는가?

기업들이 빅블러 시대에 방황하지 않고 뻔하지 않게나아가려면 경계를 인식하지 않는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경계 허물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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